녹십자는 디지털헬스케어 기업이 될 것인가? (2/3)- 유비케어 인수를 통한 삼위일체의 꿈
지난 글에서 녹십자의 건강관리 서비스를 향한 오랜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건강관리 서비스를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로만드려는 녹십자의 노력은 녹십자 헬스케어의 매출과 영업이익 성장을 통해 최근 그 빛을 보는 듯 합니다. 그 규모가 크지 않으니 더 지켜보아야 하겠지요.
녹십자는 벤처투자를 통해서도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살펴본 녹십자 헬스케어는,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도 초중반까지 흔히 회자된, 성공적인 디지털 헬스케어 비즈니스 모델을 모두 시도해 보았습니다. 위 피투자사들의 면면을 보면, 2010년 중반부터 붐을 타던 빅데이터/AI+헬스케어 의 전형적인 방향을 따라가고 있어 놀랍습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유비케어 인수가 진행되었다고 보는데요. 녹십자가 투자한 회사들은 건강과 관련된 정보들은 모두 갖추고 있지만 의무기록 데이터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의미냐. 건강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갖춘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먼저 탐구해보겠습니다.
보통 건강과 관련된 데이터라고 하면 크게 세가지 카테고리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 전자의무기록 데이터
- 병원에서, 의료공급자와 환자 간 상호관계를 통해 발생하는 각종 검사기록, 진료기록, 영상기록 등 입니다.
- 생물학적 데이터
- 유전자 분석 등 생물학적 현상과 관련된 molecule들의 정체를 밝혀내고 계량화한 것 입니다.
- Lifelog 데이터
- 스마트 디바이스의 발달로 얻어지는 도보기록, 영양기록 등 의료기관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건강과 밀접히 관련된 데이터 입니다.
위와 같은 데이터가 모이면 Quantified self (계량화된 자아, 필자 역) 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많은 회사들이 사람의 건강을 계량화 (Quantification)하고 이를 통해 건강증진 및 치료를 위한 방법을 좀더 효율적으로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알파벳의 Verily사의 baseline study (https://www.projectbaseline.com/)를 들 수 있습니다. 현재 기술로 측정할 수 있는 건강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여 '정상', 즉 baseline을 밝히는 것이 목적입니다.
아래는 project baseline에서 수집하는 데이터에 대한 설명입니다.
위에서 소개해드린 세가지 카테고리와 연결됩니다. Data recorded by mobile devices는 lifelong데이터, electronic health records는 전자의무기록 데이터, biospecimens or data recorded by medical devices가 생물학적 데이터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세가지 데이터를 수집함으로써 1) 기존에 알지 못하던 biomarker (생체표지자) 를 밝혀내거나 2) 기존에 없던 치료법을 개발하는 이 두가지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다 하던 일인데 더 많은,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통합해서 위와 같은 일을 해내겠다는 것이지요.
기존에 알지 못하던 biomarker를 밝혀내는 일은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해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기존에 측정하지 않았던/못했던 데이터를 측정하여 biomarker로서의 활용가능성을 밝히는 것, 두번째는 기존에 측정하였던 데이터들을 조합하여 biomarker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기존에 측정하지 않았던 데이터의 biomarker로서의 활용가능성을 밝히는 일은 다음 기사 (스탠퍼드 물리학자, 머신러닝으로 변을 분석하다,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8) 에 잘 나와있습니다. 스마트 변기를 제작하여 일상적으로 변에 있는 데이터를 수집함으로써 장질환의 진단, 예측, 치료를 돕겠다고 하네요. 아마도 측정하는 biomarker 자체는 기존 진단검사 기기를 통해 측정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이를 일상적으로 기록하여 축적하게되면 해당 데이터의 trend/pattern이라는 새로운 biomarker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추가로, 본 스마트변기 프로젝트는 위에서 언급드린 project baseline의 일부라고 하네요.
기존에 측정하였던 데이터들을 조합하여 biomarker를 찾아내는 일에는 대표적으로 Electronic Health Record (EHR) 와 Genomic Data의 통합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국립보건원(NIH, National Health Institute)주도로 eMERGE (electronic Medical Record and GEnomics) network를 구성하여 두 데이터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EHR 데이터로부터 임상적으로 명확히 정의된 환자의 데이터를 얻고 이를 유전체 데이터와 연결하여 의미있는 biomarker를 찾아낼 수 있겠지요.
기존에 없던 치료법을 개발하는 일은 위 biomarker를 발견하는 일과 밀접하게 연결되 있습니다. 새로이 발견된 biomarker - 전통적인 체액/영상으로부터의 biomarker가 아니라 행동패턴이 될 수도 있습니다. - 가 질병의 원인으로 규정된다면, 이를 교정하는 방법으로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데이터의 조합으로 발견된 biomarker에 대한 치료법을 개발할 수도 있겠지요. 최근 유명 Direct-to-Consumer 유전자검사 회사인 23andMe에서는 스페인 바이오텍인 Almirall에 건선치료제 개발 및 상업화 권한을 라이센스 아웃하였습니다. (23andMe licenses drug counpound to spanish drugmaker almirall,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20-01-09/23andme-licenses-drug-compound-to-spanish-drugmaker-almirall?sref=ExbtjcSG) 23andMe가 갖고 있는 데이터는 백만 회원들로부터 받은 유전자검사 데이터와 설문조사 데이터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IL-36을 타겟으로 하는 약이라고 하는데요, 설문조사 데이터를 통해 psoriasis phenotype을 가진 회원을 특정하고 이들의 유전자 데이터를 활용하여 drug candidate을 발굴하였다. 라는 스토리가 되겠습니다.
녹십자의 유비케어 인수를 설명하기 위해 긴 설명을 드렸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 카테고리의 건강정보를 고려 시, 녹십자의 포트폴리오를 다시 보자면, 1) 케어랩스와 휴먼스케이프를 통해 소비자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lifelog데이터) 2) Cipherome과 Genoplan을 통해 유전체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 데이터) 단 하나 빠져있는 것이 전자의무기록 데이터입니다. 유비케어를 인수하면, 이 세가지 데이터가 모두 충족됩니다. (삼위일체의 꿈)
지금까지 녹십자가 유비케어 인수 전에 모아놓은 데이터 소스들을 조금만 더 들여다 보겠습니다.
케어랩스와 휴먼스케이프에서 수집해온 (해왔으리라 생각되는) 데이터는 라이프로그 데이터 (+마케팅 데이터) 입니다. 케어랩스의 주요 서비스는 굿닥, 바비톡, 메디잡, 휴먼스케이프의 주요서비스는 레어노트, 마미톡입니다. 케어랩스에서는 주로 의료소비자를 믿을 수 있는 데이터 소스와 연결함으로써 소비자의 정보를 모으고 있습니다. 굿닥과 바비톡은 믿을 수 있는 의사, 믿을 수 있는 미용의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을 모아왔죠. 휴먼스케이프의 서비스들은 환자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합니다. 건강데이터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더 파급력 있는 정보는 휴먼스케이프의 서비스로부터 얻어지는 정보입니다.
Genoplan은 소비자 대상 유전자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이고, Cipherome은 유전체 기반 약물 반응 검사를 수행하는 회사입니다. 이 두 회사에서는 유전자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겠죠. Genoplan은 다이어트/식이 추천을 위한 유전자검사였고(현재 홈페이지에서 명확한 검사대상은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Cipherome은 약물대사 관련된 유전자검사를 시행하는 회사이니 검사항목에 타 질병 정보 및 건강정보와 결합하기에 제한적이기는 합니다.
녹십자에서 유비케어를 추가 인수함으로써 위 세가지 데이터를 모두 모으게 되는 셈 입니다. 데이터가 유의미한 발견과 비즈니스로 이어질지 여부는 이는 각 회사들이 갖고 있는 데이터가 유의미한 결합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데이터 통합을 통해 biomarker/치료법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첫번째, 각 데이터가 호환 가능한 형태여야 합니다. 두번째, 각 데이터가 다루는 임상 영역이 유사하여 연결고리가 있어야 합니다. 첫번째의 호환 가능한 형태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두번째 임상영역이 유사한지 살펴보면 휴먼스케이프가 다루는 희귀난치성 질환과 Cipherome이 다루는 ALL(Acute Lymphocytic Leukemia)가 영역이 겹칠 수 있겠습니다. 이외에 딱히 겹치는 영역이 보이지는 않네요. 휴먼스케이프가 ALL환자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면 Cipherome의 연구에 촉매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한편 새로 인수한 유비케어가 구심점이 되어 여러 데이터 통합의 플랫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비케어는 우리나라 중소병의원의 전자의무기록시스템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는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추후 대다수 국민들의 경증질환 진료기록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들이 보유한 데이터는 케어랩스의 굿닥이나 제노플랜의 일반인 대상 유전자데이터와 합쳐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질환 환자들을 타겟으로 하지는 않으나 일반인 대상의 광범위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니 이 플랫폼들을 통합하면 동일인의 여러가지 종류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되겠지요.
비록 위와 같은 통합은 특정 unmet medical needs를 타겟하고 있지는 않으나 많은 사람들의 다중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지금까지 설명드렸지만, 멀고 먼 이야기이죠.
녹십자의 전략을 수립하시는 분들이 장기적인 관점도 가지고 계시겠지만, 당장 인수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냐? 는 또다른 문제입니다. 다음 글에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